"과학 기술의 윤리: 과학자의 윤리에서 첨단 기술의 윤리로(이덕환 교수)" - 네이버 열린연단 강연 시리즈

네이버 열린연단 강연 시리즈 중에 2016년 12월 10일에 있었던 "과학 기술의 윤리"라는 제목의 강연+토론인데, 그중 1부: 서강대학교 화학과 & 과학커뮤니케이션 전공 이덕환 교수의 강연이다. 근데 듣다 보니 내용이 꿀잼이다. ㅋㅋ

한국 과학 발전의 역사를 짚어가면서, 유명한 2005년의 '황우석 사태'에 대한 이야기도 중요하게 다루고 있고, 그밖에 한국인 과학자들이 왜 돈만 처먹고 노벨상 못타고 찌질하냐고 비난 많이 받는데, 전국가적인 투자는 기술개발 쪽에 잔뜩 해놓았는데 정작 노벨상은 기술개발의 성과가 아니라 기초과학의 지식을 세운 사람들에게 주는 상이었다는 얘기도 있다. 본인이 과학 전공자라면 이 강연 한 번쯤 시간 내서 각잡고 시청하길 권한다. 꼭 봐라. 두 번 봐라.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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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연단: 문화의 안과 밖 강연 시리즈] - 2016 바른 사회와 의미 있는 삶을 위한 성찰
과학 기술의 윤리: 과학자의 윤리에서 첨단 기술의 윤리로 

이덕환 교수는 “과학 기술의 윤리를 강화해야 된다”는 주장은 어떤 경우에도 옳다고 전제하면서 특별히 현 상황에서는 “과학자의 자정 노력이 더 강조돼야” 할 것이라고 생각을 밝힌다. 한편 자율성을 장려하기 위한 제도적 안으로는 그 기준을 모호함 없이 명백하게 만들 것,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투명하고 합리적인 기준”을 어길 시에는 “관용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라고 힘주어 이야기한다. 그와 더불어 비판적 합리주의라 할 ‘과학 정신’을 튼튼한 기초로 삼아 “인체에 위험하지 않고 환경에 위험하지 않은 기술”이 존재한다는 환상을 버리고 첨단의 과학 기술에 대해서 “어느 정도를 어떻게 수용하고 용납할 것인지의 문제”를 면밀히 따져보는 게 현명한 길이 될 거라 말한다.


[하이라이트] "황우석 사태" (1부 강연 中)



"황우석 사태를 얘기를 안 하면 과학 기술의 윤리에 대해서 얘기가 완성이 안 될 것 같아요. 2005년 11월에 정말 과학 기술 분야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 터졌습니다. MBC의 고발로 시작이 된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돼서 지금 우리 사회에서 보고 있는 것(국정농단사태)과 거의 같은 수준의 논란이 과학 기술계에서 있었습니다. 이 황우석 사태는, 자세한 얘기는 반복할 필요가 없을 것 같고, 하여튼 부당하게 정치적 영향력을 확보한 과학자가 저지를 수 있는 최악의 윤리 위반 사태였다고 저희는 평가를 합니다.

그 다음에 '황금박쥐(황우석-김병준-박기영-진대제)', 이건('금') 저도 누군지는 모르겠는데(김병준 당시 청와대 정책실장) 앞의 '황'은 황우석이고요, 여기('박')는 박기영이라는 생물학을 (공부)했다가 참여정부에 들어가서 요직에 있었던 사람이고 하여튼 정치인들입니다. 이 사람들의 영향력에 의해서 황우석 사태가 만들어졌던 거죠. 엄청난 일이었습니다. 심지어는 황우석 박사한테 연구비를 대주고 연구 시설을 만들어주고 하는 것은 잘 모르겠는데 황우석 박사한테는 경호원도 제공을 했어요. 경호하는 것하고 과학 기술 연구하고 무슨 고나게가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여튼 정부가 황우석 박사한테 제공해줬던 보상 중의 하나였습니다. 

황우석 사태가 진행되고 그 이후로 과학 기술계에 대해서는 엄청난 비난이 쏟아졌죠. 마치 모두가 황우석이었던 것처럼 돼버렸습니다. (중략) 이건 아마 지금 정부에 의존해서 새 시대를 열어보려고 하는 인문학자들한테도 굉장히 좋은 교훈이 될 것 같습니다. 과학 기술계가 지금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결론은 '정부 돈은 가능하면 안 먹는 게 좋을 것 같은데...'(이지만) 대안이 없어서 할 수 없이 먹고 있는데 아주 고통스럽습니다. 

과학 기술계가 사회적 지원을 확보하기 위해서 정치에 접근하는 부분도 있지만 정치가 거꾸로 과학 기술계를 뒤흔드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그중의 하나가 복제견, 개 복제에 대한 건데요. 이건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중략) [네이처]에 editorial이라고 하는 게 실렸는데요, 자기네가 지금 이 복제견 사업에 대해서, 한국에서의 복제 기술 부활에 대해서 큰 기사를 싣는데, 그걸 잘하고 있다고 칭찬하기 위해서 실은 것이 아니라, 엄청난 실수를 저지른 과학자가 아주 짧은 시간에 명예를 회복하는 아주 드문 사례에 대해서 저널리스트적 관심 때문에 이 기사를 쓴다, 이런 에디토리얼이 (실렸습니다). (중략) 그러니까 [네이처]에서 이 기사를 쓴 이유는, 굉장히 잘하고 있다고 칭찬하기 위해서 쓰는 게 아니라 '이 나라 도대체 어떻게 된 나라냐, 왜 이렇게 황당한 일을 저지른 과학자한테 짧은 시간 안에 재기의 기회를 주느냐, 이상한 나라다' 이런 비웃는 기사였어요. 이 에디토리얼에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황우석을 통해서 줄기세포에 대한 엄청난 기술을 확보했던 것처럼 착각을 하고 있는데, 사실은 한국 과학자들이 확보한 줄기세포 기술은 아무것도 없었다라고 여기 명시적으로 써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언론에서 우리의 과학 기술의 현실에 대해서 얼마나 잘못 보도하고 있었는지를 (말해주는) 짧은 에디토리얼입니다. 이 내용을 한 번 주목을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게 우리 과학 기술계의 현실입니다."


1부 강연: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



이덕환 : 제가 ‘과학자의 윤리’라고 하는 것은 직업인으로서의 과학자의 윤리, 그러니까 과학자의 직업 윤리에 대한 이야기고요, 무게중심이 과학자에 맞춰져 있습니다. 얘기의 상당한 부분을 우리 과학 기술계의 현실, 특히 윤리적인 측면에서의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그리고 오히려 저는 오늘 ‘첨단 기술의 사회적 수용성’에 관련된 윤리적인 측면을 좀 더 강조를 해서 말씀을 드리고 싶은데 어느 정도 성공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 21세기의 키워드는 ‘민주화’하고 ‘과학 기술’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사회적 합의가 굉장히 중요하고 과학 기술에 대한 인식이 굉장히 중요하다 이런 얘기인데 제일 대표적인 게 첨단 과학에 대한 윤리적 논란입니다. 특히 생명과학하고 생명공학 사이의 구분, 어떻게 해야 되는가에 대해서 아주 혼란스럽습니다. 일부에서는 생명과학하고 생명공학은 구분이 불가능하다, 그러니까 같은 거다 그래서 윤리적으로 제재와 규제를 해야 된다 이런 주장도 있고 그렇지 않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런데 하여튼 과학 지식이 반영된 윤리 의식, 우리 사회의 윤리 인식도 이제는 첨단 과학 지식을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된다라는 얘기를 드리고 싶습니다.


2부 토론: 이종관 성균관대 철학과 교수



문광훈(사회) : 과학을 전공하지 않은 아마추어의 시각으로 보면 우선 우리 과학 기술의 발전 단계가 1960년대에서 1980년대를 지날 때까지 이른바 추격형이었다는 것, 그 때문에 그냥 선진화된 기술이나 정책들, 기준들을 그저 베끼고 모방했고 그래서 어떤 윤리적 기준을 고려할 여유가 전혀 없었는데 이제는 우리 자신의 기준을 주체적으로 만들어야 할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것, 글로벌 스탠더드의 기준을 따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의 지적인, 문화적인 배경에 뿌리를 박은 우리 자신의 과학 기술의 윤리 지침과 정책과 제도를 만들어가야 된다는 것, 그것은 상당히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이종관 : 과학 기술이 어떤 가치에 편향되지 않기 위해서 중립성을 유지하는 것은 굉장히 인정할 만한 태도지만 그 이면, 다시 말해서 나쁜 가치, 나쁜 목적에 무기력하게 이용당하는 것에 대해서 과학 기술자들이 어떤 경계심을 가져야 되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그런 경계심을 가질 수 있는 과학자의 태도 그런 건 무엇인지 한번 의견을 듣고 싶고요. (…) 다음은 과학 기술자들이 지금 평가를 받고 있는데 거기에 묘한 아이러니가 숨어 있다, 뭐냐 하면 평가 제도 자체가 과학적인데 그 과학적이라는 평가 제도가 사실은 과학자를 인간으로 보는 게 아니라 과학자들이 탐구하고 있는 그 세계, 즉 물질의 세계 속에 있는 물질로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런 의문이 들 수 있다는 것이고요. 그리고 과학에 대한 윤리적 성찰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도대체 그때의 윤리는 어디에 근거해야 되는 건지 문제를 제기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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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록]
과학 기술의 윤리 - 과학자의 윤리에서 첨단 기술의 윤리로

(전략)

황우석 사태 이후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던 과학 기술의 윤리에 대한 논의가 이제는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간간이 일부 과학자들의 비윤리적 일탈이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고, 의료 분야에 한정된 범위에서 제도화된 생명윤리 논의가 지지부진하게 이어지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문제가 만족스러운 수준으로 해결된 것은 아니다.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첨단 기술의 윤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오히려 줄어들었고, 과학 기술 투자의 저효율성에 대한 무차별적인 비판이 훨씬 더 중요한 사회적 이슈가 돼버렸다. 관료주의의 틀에 갇혀버린 과학자들도 윤리 문제에 대한 충분한 관심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과학 기술의 윤리에 대한 논의는 지극히 제한적이다. 연구 수행과 논문 발표에 적용되는 연구 윤리의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과학자들의 비윤리적인 부정행위를 철저하게 막아야 한다는 당위적 지적이 반복되고 있고, 우리 과학자들의 윤리 의식이 국제적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패배주의적인 비판도 넘쳐난다. 과학 기술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가진 관료와 언론의 일방적인 주장이 대부분이고, 국제화를 외면할 수 없는 과학 기술의 특성도 무시한 지적이다. 과학철학과 사회학도 윤리 문제에 대한 논의의 본격적인 활성화에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과학 기술 현장의 실제 문제는 외면하고, 국외자의 입장에서 먼 곳의 양 떼를 분석하는 자세가 일반적이다. 정부의 제도 개선을 위한 노력도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과학 기술 분야의 윤리적 상황은 다른 학문 분야와 분명하게 구별된다. 흔히 정부의 고위직 인사의 청문회에서 제기되는 부당한 학위 취득, 학술 논문의 표절과 중복 출판, 연구 실적의 도용 등의 논란은 과학 기술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과학 기술 분야에서 논문의 표절이나 저자 표시 등의 초보적인 윤리 문제는 상당한 수준으로 개선되었다. 거의 모든 학술 단체들이 상당한 수준의 윤리 강령을 시행하고 있고, 표절 여부를 기계적으로 가려내는 소프트웨어를 활용하고 있다. 오늘날 과학 기술계를 괴롭히는 윤리 문제는 따로 있다. 연구비 관리와 연구실 문화에서의 일탈 행위와 연구의 비효율성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첨단 기술의 윤리 문제도 새로운 도전이다. 거의 모든 사회 문제가 과학 기술과 직결되어 있고, 사회의 윤리관도 과학과 기술의 급속한 발전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과학자의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첨단 기술의 윤리에는 사회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수이다. 윤리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예상되는 기술의 경우에는 개발과 활용 단계에서부터 사회적으로 철자하게 감시할 수 있는 사회적 역량이 필요하다. 새로운 기술의 수용성과 관련된 윤리 문제는 쉽게 정의하기도 어렵고, 제도적으로 규제하기는 더욱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첨단 기술의 윤리에 대해서는 사회적으로 활발하고 적극적인 논의가 반드시 필요하다. 첨단 기술의 윤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가치 중립적인 과학의 영역으로 확대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중략)

황우석 사태를 겪고 난 2007년 4월에는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과 연구 윤리 등을 명시한 '과학기술인 윤리강령'도 제정했다. 과학 기술 분야의 학술지 편집에서 소프트웨어를 사용한 표절 감시가 필수과정으로 자리를 잡았다. 다른 분야와 달리 과학 기술 분야에서는 학술 논문의 표절, 저자 표시, 중복 게재는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려워진 것은 그런 노력의 결과다.

2005년 11월에 불거진 황우석 사태는 추격형 과학 기술의 성과에 취해 있던 우리 사회가 감당하기 어려운 충격이었다. 과학 기술계 전체가 윤리적으로 타락한 집단으로 매도되었고, 과학 기술에 대한 사회적 불신도 증폭되었다. 황우석 사태는 부당한 정치적 영향력을 확보한 과학자가 만들어낼 수 있는 최악의 윤리 위반 사례였다. 연구비를 확보하는 과정에서부터 연구 성과를 발표 단게에 이르게 하는 모든 과정이 비정상적이었다. 과학 기술계가 황우석의 비윤리적인 연구 행태를 인정하거나 용납한 적은 없었다. 다만 정치권과 정부 고위 관료의 힘을 앞세운 '영웅 만들기'에 대항하기에는 역부족이었을 뿐이다. 황우석 사태는 정부의 지원에 매달려 성장해왔던 우리 과학 기술이 정치적, 사회적 영향력 앞에 얼마나 무기력한지를 분명하게 보여 주었다. 비정상적인 정치적 영향력이 휩쓰는 사회에서는 과학 기술도 윤리적으로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중략)

황우석 사태의 파장은 생각보다 훨씬 심각했다. 1967년에 신설되어 국가 과학 기술 정책을 총괄했던 과학기술처는 2008년 교육과학기술부로 개편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2011년에 대통령 직속의 행정 위원회로 출범했던 국가과학기술위원회도 2년 만에 교육과학 기술부와 함께 간판을 내렸다. ICT(정보통신기술)와 함께 창조경제를 전담하는 미래창조과학부가 과학 기술 정책을 담당하고 있다. 과학 기술이 국정의 중심에서 완전히 밀려나버리게 된 것이다. (중략) 국가 연구개발 사업의 주체가 분산되면서 심각한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과학적 근거가 전혀 없는 연구개발 사업이 과학 기술로 둔갑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해양수산부의 천일염 명품화 사업과 경찰청의 경찰견 체세포 복제 사업은 정부의 과학 기술 연구개발 사업의 범위를 완전히 벗어난 것이다.

민주화, 외환 위기, 황우석 사태 이후 과학 기술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심각한 수준으로 훼손되어버렸다. 국가 연구개발 사업을 주도했던 과학자들이 이제는 사회적 관리의 대상으로 전락해버렸다. 1993년 김영삼 정부의 출연 연구소 민영화 시도로 시작된 출연 연구소의 구조 조정은 20여 년이 넘도록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한 채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 외환 위기를 핑계로 단축된 출연 연구소 과학자들의 정년도 회복되지 않고 있다. 결과적으로 연구개발 사업의 기획, 관리, 평가의 전 과정에 대한 관료 사회의 영향력이 크게 확대되었다. 연구개발 사업의 불합리한 관료주의적 관리에서 발생하는 문제가 과학자의 윤리를 위협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기 시작했고, 과학 기술 투자의 비효율에 대한 사회적 비난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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